로잘린, 당신과 앨런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무너져 버렸을 거야.
사랑하는 로잘린에게
당신과 앨런 모두 잘 지내고 있지? 아키움 군단에 입대하자 마자, 이런 외딴 섬으로 차출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여긴 너무 끔찍해. 막사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비좁고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어. 눅눅한 이불은 차가운 습기를 머금어 덮기조차 싫지만, 사방에서 파고드는 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덮어야 해. 음식도 끈적한 죽 뿐이어서 한입 삼킬 때마다 구역질이 올라와. 최근에는 며칠 째 비가 내려서 발을 딛는 곳마다 흙탕물이고, 물컹거리는 진흙이 자꾸 신발 속으로 스며들어 발이 썩어가는 기분이야.
그래도 당신과 앨런의 초상화를 꺼내 볼 때면, 잠시나마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이 들어. 그 순간만큼은 고통도, 두려움도 잊을 수 있어.
아, 갑자기 지휘관의 소집 명령이 떨어졌어. 어서 가봐야겠다. 앨런에게도 내 사랑을 꼭 전해줘. 아빠는 여기서 어떻게든 버틸테니 두 사람도 힘내주길 바라.
사랑을 담아, 당신의 남편이.
그리운 로잘린에게
로잘린, 열흘만에 다시 편지를 써.
매일이 끝없는 전투의 연속이야. 저항군들과 유물을 두고 교전을 반복하면서 매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어. 처음에는 두려움 속에서 싸웠지만, 지금은 그조차 무뎌져 버렸어.
며칠 전에는 참혹한 일을 겪었어. 나는 상부의 명령으로 유물을 빼돌리려다 걸린 동료들을 천으로 칭칭 감아 나무에 매달아야 했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던 그들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해. 아아, 이 손으로 그런 참혹한 짓을 하다니...!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아.
로잘린, 요즘들어 기억 속 당신과 앨런의 얼굴이 희미해져서 초상화를 더 자주 꺼내보게 돼.
이런, 초소 근무 교대 시간이 됐어. 당신에게 더 많은 걸 털어놓고 싶지만, 바로 나가봐야 해. 다음 편지에서는 더 나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기를.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
소중한 로잘린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 매일 반복되는 전투와 가혹한 처벌 속에서 나는 점점 무너지고 있어. 동료들을 나무에 매달던 그 순간, 나는 이미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
이젠 초상화 속 당신과 앨런의 얼굴도 낯설어. 당신의 미소와 앨런의 웃음소리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아. 이곳은 모든 걸 삼키는 어둠 그 자체야. 나와 우리,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정말 돌아가고 싶어. 당신과 앨런의 곁으로. 따뜻한 저녁 식탁 앞에서 다함께 웃는 순간을 얼마나 간절히 꿈꿔왔는지 몰라. 하지만 내 손도, 영혼도 이젠 너무 더럽혀졌어. 아마 이곳에 남아 돌아가지 않는 게 내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사랑일지도 모르겠어.
부디, 나를 잊고 앨런과 새로운 행복을 찾길 바라.
마지막 남은 마음을 담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남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