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학문의 진보란 끊임없는 연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실수'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 역청 정화 장치의 발명도 그중 하나의 사례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침묵의 습지에서 분출되고 있는 붉은 안개를 정화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붉은 안개는 생물들을 변이시켜 습지의 생태계를 파괴해 왔다. 특히 안개가 농축되어 만들어지는 붉은 역청은 정화의 핵심 과제였다. 이 때문에 많은 연구자가 머리를 모았으나,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많은 난항에 부딪히곤 했다.

그러던 중, 우리는 열처리 방식으로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장치에 착안해 역청 정화 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발화 성질을 지닌 마력 물질로 열을 발생시켜 오염을 정화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 낸 열만으로는 역청을 정화할 수 없었다.

이번엔 마력 물질에 석탄을 주입하여 열의 강도를 높이는 실험을 진행해 보았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진 못했다.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 한 신입 연구자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달려가 보니, 신입 연구자가 머리를 감싸 안고 자책하고 있었다. 장치 속의 마력 물질에 석탄 대신 역청을 주입한 것이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력 물질이 역청과 반응해 열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에 더 많은 역청을 한꺼번에 주입하자, 강한 열이 발생해 소량의 역청이 정화되었다. 즉, 오염 물질로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장치가 개발된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토대로 연구의 진보를 위해선 모든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깨달았다. 비록 그것이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