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덥고 습한 날이었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니, 어린 오크 하나가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있었다. 어린 오크는 나를 물고 할퀴어댔지만, 그물을 끊어주자 금세 경계심을 풀고 다가왔다. 내가 네뷸라카 부락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어린 오크는 보답으로 네뷸라카 부족의 영웅, 크타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네뷸라카 부족은 인간을 아주 싫어했다. 인간들은 부락을 제멋대로 드나들며 마구잡이로 오크들을 공격했다. 전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지만, 강한 인간들에게는 매번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결국, 제사장이 부족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오크의 신 프라마칸의 가호를 빌어, 부족 최강의 전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마침내 프라마칸 님께서 답을 주셨다! 신의 가호를 받은 크타르는 우리 네뷸라카의 최정예 전사다! 크타르는 가장 앞장 서서 부락을 지키고, 먼저 간 약골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

오크들은 크타르의 우람한 덩치와 압도적인 힘에 열광했다. 크타르를 본 인간들도 함부로 부락에 다가오거나 부족의 오크들을 도발하지 않았다. 때때로 패기 있게 덤벼드는 인간도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꼴이 되어 간신히 도망쳤다. 마침내 인간들의 도발이 완전히 사라지고, 부락에는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크타르의 폭력성은 부락의 오크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크타르는 때리고, 던지고, 부수며 주변의 오크들을 괴롭혔다. 이제 멀리 크타르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꽁무늬를 빼고, 노인들은 움막 속에 틀어박혔다. 그러자 크타르는 젊은 오크들에게 시비를 걸고 크게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자신을 질타하는 오크들에게 외쳤다.

"너무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왜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거냐!"

부락을 지켜야 할 젊은 전사들이 계속해서 피해를 입자, 오크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대책을 논의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나이 많은 오크가 말했다.

"크타르가 그렇게 심심해 한다면 함께 놀아주면 되지 않느냐."
"그 무서운 크타르랑 어떻게 놀란 말이야?"

그때, 한 오크에게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는 연못에서 딱총 개구리알을 잔뜩 긁어 와, 크타르가 벗어 놓은 옷과 신발에 들이부었다. 딱총 개구리알은 터질 때 따끔하고 방귀 소리까지 나서, 움직일 때마다 매우 꼴사나웠다. 크타르는 크게 화를 냈지만, 개구리 알을 씻어내느라 싸울 시간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오크들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복수... 아니, 놀거리를 만들어 왔다. 예를 들어, 한 오크는 산에서 붉은 점박이 벌을 잡아왔다. 점박이 벌은 침을 쏘지 않지만, 날개 소리가 아주 컸다. 그는 크타르가 잠들려고 할 때마다, 벌을 풀어 일어나게 만들었다.

크타르는 매일 오크들의 장난에 시달리느라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 생각은 아예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외진 곳에 숨어 홀로 시간을 보냈고, 누가 다가올 것이 두려워서 끼니 때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나이 많은 오크는 그런 크타르를 가엽게 여겨 갓 잡은 생선이나 맛있는 과일을 나누어 주었다. 크게 감동한 크타르는 그동안 그를 무시했던 것을 사과했다. 사실 그 오크는 부락에서 가장 재주가 많은 오크였지만, 한번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기술을 알려주고, 그가 성장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볼 때가 많았다. 진심으로 그를 따르게 된 크타르는 자연스럽게 겸손과 덕을 배웠다. 완전히 달라진 크타르는 어느새 네뷸라카 부족의 진정한 영웅이 되어 있었다.
***

어느 덧 우리는 네뷸라카 부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다다랐다. 어린 오크는 신이 난듯 밝게 인사를 건네더니, 단숨에 언덕을 달려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