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월 XX일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정령의 동굴 안에 있는 마법진을 청소하러 왔다. 너무 두근거린다. 피에르 선배에게 혼나지 않으려면 고여 있는 어둠의 기운을 싹싹 쓸어내야 한다. 아, 물론 쓸어낸다는 건 비유다... 빗자루로 하는 게 아니니까! 나에게 맡겨진 첫 임무이니 만큼 진짜 잘 해내야지!
OO월 XO일
피곤해 죽겠다... 어째서 엘프들은 이런 곳에 마법진을 만든 걸까. 그냥 잘 보이는 호수 한가운데 만들면 안됐던 걸까?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곳에다 만들었으면 청소 같은 거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오는 길에 물의 골렘들이 드글드글해서 세상 하직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도 베네룩스의 마법사야! (견습이지만) 골렘 정도는 손쉽게... 어떻게든! 처리하고 말 테다.
OO월 OX일
안돼!! 또야!! 와서 청소하고 정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마법진 주변에 또 골렘들이 하나 가득!!
그래 이제야 알겠어. 피에르 선배가 순례자의 사당에 방문하는 순례자들의 상대는 자기가 전부 떠맡을 테니 일주일에 한번씩 마법진 청소나 맡으라고 하던 게 결코 친절이 아니었던 거야...
아아 어리석은 노비아. 난 왜 이렇게 순진할까.
그래... 몇 년만 여기서 버티면 곧 나에게도 후배가 생기겠지... 그때가 되면 피에르 선배도 졸업을 하고 내가 선배가 될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나도 자비롭게 후배에게 이 일을 몽땅 미룰 거야. 두고 봐!
OO월 XX일
드디어 이곳에 온지 한달만에 (그동안 난 다섯번이나 이곳을 청소했다!) 발리나 님께 이곳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이곳은 녹음 가득한 숲 속이었고, 엘프들은 이곳에서 나무들의 힘을 빌려 일반적인 마법진보다 열 배 가까이 강력하게 물의 힘을 빨아들이는 마법진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과연 나무와 동고동락하던 엘프들 다운 발상... 그런데 이 근처에 진리의 신전이 생긴 이후 그만, 어떤 마법사의 잘못으로 어둠의 정령이 생겨났고... 이 마법진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물의 힘만이 아니라 어둠의 힘도 계속해서 이쪽으로 이끌리게 것이다! 무한히 응축되는 물의 힘에다가 스멀스멀 파고드는 어둠의 힘의 영향으로 아무리 부숴도 골렘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게 된 거다!! 결국 선대 마법사가 싼 똥을 후대 마법사가 치우게 된 꼴이었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언제쯤 되어야 나는 청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제발 누구라도 날 좀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