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내 아들 마틴은 잔학무도한 연쇄 아동 살인마의 희생양이 되어 죽고 말았다. 단지 자신의 유희를 위해 순수한 아이들만을 골라 살해했다는 놈은 아이나르 신전에 끌려가 처형당했지만....
아이를 잃은 충격에 나는 한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으면 공포에 질린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고, 눈을 뜨면 살려달라 애원하는 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끔찍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살아왔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열흘간, 아이나르 신전으로 향하는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마음속 가득한 슬픔과 분노의 응어리를 털어내 보기로 했다. 아이의 영혼을 편안히 보내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과연 나는 이 길의 끝에서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까?
아이나르 신이시여.... 저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순례자의 길 위를 내디딜 때마다 아이를 잃은 비통함이 날 옥죄어 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땐 아이나르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촛불을 올려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내 삶에 내려진 이 저주스러운 분노를 잠재울 수 있길. 그래서 아이나르 신의 뜻대로 모든 걸 용서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말이다.
그 간절함이 닿은 덕분일까? 순례자의 길 끝에 다다라 갈수록 끓어 넘치던 나의 분노는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털어냈다고 생각하며 절망의 섬에 다다른 그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정화의 물속에 가라앉은 살인마의 시체를. 그 끔찍한 짓을 벌여놓고도, 놈은 아이나르 신의 은혜로 모든 죄를 씻어낸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사그라든 줄 알았던 분노의 응어리가 폭발하고 말았다. 아무리 놈이 아이나르 신의 심판을 받았다 해도, 어찌 극악무도한 죄가 정화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놈의 죄를 용서할 자격은 없다. 그게 신이라 해도 말이다.
순례자의 길 종착지에서 나는 절대 놈을 용서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아들 마틴을 위해서라도, 당장 물속에서 저 살인마의 시체를 끄집어내 갈가리 찢어줄 것이다. 누구도 놈의 죄를 정화할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