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네뷸라 섬의 오크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들은 작은 뗏목에 의지하여 상어가 우글거리는 바다를 지나 기적적으로 네뷸라 섬에 도착했다.
네뷸라카 오크들은 왜 풍요로운 라슬란 땅을 버리고 위험이 도사리는 미지의 섬을 택했을까?
많은 학자들은 네뷸라카 오크의 기원을 사라진 칼투란 부족에서 찾고 있다. 뿔뿔이 흩어진 칼투란 부족의 한 무리가 네뷸라 섬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부족이 되었다는, 이른바 칼투란 이주설이다.
칼투란 부족은 평생을 늑대와 상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교전부터 사냥, 채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늑대에 의지한다. 만약 네뷸라카 오크가 칼투란에 기원을 두고 있다면 목숨처럼 아끼던 늑대는 왜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 걸까?
이에 대해 나는 그간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라슬란 일대에는 포노스나 칼투란이 아닌 또 다른 오크 부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부족은 강인한 포노스와 날렵한 칼투란에 밀려 제대로 된 터전을 가꾸지 못했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곳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결국 이들은 바다로 나갔고, 네뷸라 섬을 밟은 유일한 오크가 되었다.
대단히 과감하고 획기적인 가설이었으나, 학회는 내 논문을 연구회의 뒤풀이 안주 삼아 나를 모욕했다. 저 고리타분한 연구회는 주류인 포노스나 아키두 연구에만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고, 새로운 도전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 겁쟁이들이었다. 그런 답도 없는 작자들에게 모욕을 당하다니, 도저히 이 굴욕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당장 자리를 뛰쳐나가 네뷸라 섬으로 가는 배편을 찾았다. 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네뷸라카 오크에 대한 보다 실증적인 연구가 반드시 필요했다. 마침 네뷸라 섬으로 떠나는 저항군의 보급선이 있었으나, 그들은 나의 승선을 거절했다. 지금 그곳은 아키움 군단 뿐 아니라 유물을 노리는 사냥꾼이 가득한 무법지대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무서운 경고도 나의 열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급히 사공을 수배하여 작은 배 한 척을 바다에 띄웠다. 멀리 보이는 보급선이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먼 옛날 네뷸라로 떠난 오크들은 육지에 닿을 거란 기약조차 없이 망망대해를 떠돌았을 것이다. 그들의 막연하고 불안한 표정이 눈앞에 선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