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바 마을 광장에는 오직 귀족들의 의상만 제작하는 명장 달시의 의상실이 있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로 그곳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의상실에는 가격을 추측할 수 없는 값비싼 재료가 가득했다. 그 중 특히 시선을 끈 것은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자주빛 직물들이었다.
귀족의 상징이라고 하는 이 자주색의 정식 명칭은 베르칸트 마젠타이다. 붉은 색의 강렬함과 보라색의 기품, 검은 색의 근엄함을 모두 가지면서도, 특유의 밝은 광채가 감도는 것이 이 색상의 특징이다. 귀족들은 공적인 자리에 출석할 때 이 색상의 의상을 즐겨 입는데, 여기에서 베르칸트 마젠타가 귀족의 상징이라는 다소 고급스러운 인상이 생겨났다.
이 색상을 처음 발견한 것은 베르칸트 장원의 염색 공방 주인 마젤란이었다. 당시 솔리시움은 투르티잔과의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베르칸트의 가주이자 뛰어난 무장이었던 헨락 베르칸트는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며 최강자에게 어울리는 특별한 색상의 옷감을 주문했다.
마젤란은 여러모로 궁리해 보았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색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르칸트 장원에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강 수위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고, 마젤란의 염색 공방도 꼼짝없이 침수 피해를 입고 말았다. 마젤란은 물이 채 빠지기도 전에 하인들과 공방에 나가 얼룩진 직물들과 작업 도구를 건져냈다.
그때, 마젤란의 눈에 한번도 보지 못한 신비로운 자주빛이 들어왔다. 침수로 인해 바미르 강의 해조류와 작업장의 이끼, 원색 염료 등이 섞이며 세상에 없던 새로운 색상이 조합된 것이다. 마젤란은 이 찬란한 자주색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고, 결국 최적의 배합을 찾아냈다. 베르칸트 마젠타의 탄생이었다.
마침내 투르티잔을 무릎 꿇린 명장 헨락은 이 고귀한 자주빛 망토를 두르고 솔리시움으로 개선했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귀족들의 마음에 강렬하게 새겨져, 베르칸트 마젠타를 귀족들의 색상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