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오늘, 아버지가 결국 오빠 욘하크에게 베르칸트 가문의 새로운 가주 자리를 물려준다고 공표했다. 예상하던 일이긴 하지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원망 속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난 언제나 오빠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모두가 나의 뛰어난 검술과 명석함을 칭송하여도, 난 그 짙은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
오직 장자만을 편애하는 아버지의 눈에 들기에는 모자랐던 걸까. 그런 고민 끝에 난 오직 여성 기사들로만 구성한 가시꽃 기사단을 창설하기도 했다.
딸인 나 역시... 아니, 내가 더 베르칸트 가문을 지킬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새로운 베르칸트 가주로 오빠를 선택했다. ...마치 내 존재를 완전히 잊은 것처럼 말이다.
치열하게 나를 증명하고, 또 증명하여도 난 베르칸트 가문의 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무리 가시를 날카롭게 세워도 결국 누군가의 영광을 장식할, 그런 존재 말이다.
그 가시는 이제 원망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을 깊게 후벼파고 있다.
나는... 이대로 가문의 꽃으로 남아야 하는 것인가. 영원히, 베르칸트 가문에 뿌리내린 꽃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11월 27일
오빠 욘하크가 레빌 루피우스의 지원군으로 영지를 떠나있던 사이, 지병을 앓던 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셨다. 이 때문에 홀로 남겨진 난 베르칸트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나의 노력 덕분에 영지민들의 삶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견고해졌다. 그 모습을 보는 건 무척 기쁜 일이었지만,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결국 오빠가 돌아오면 이 모든 공은 오롯이 오빠의 것이 될 게 아닌가.
며칠 전 오빠 욘하크에게서 서신을 한 통 받았다. 곧, 베르칸트에 돌아와 예정대로 가주의 자리를 꿰찰 거라는 내용이었다. 비탄에 젖어있던 그때, 나는 아버지가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비밀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바로, 저택 지하에 숨어 있던 식물화된 괴인을 말이다!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 때, 나는 식물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그 기괴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괴물은 마치 오랜만에 소리를 내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자신의 힘을 나누어줄 테니, 새로운 베르칸트 가문의 가주가 되라고.... 그리하여 자신을 해방해 달라고 말이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베르칸트 가주의 자리라니! 그것은 무력한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준 마지막 기회 같았다.
이제, 이 베르칸트 가문은 나의 지휘 아래 더욱 번성하게 될 것이다.
바로 오늘 밤, 그 위대한 역사가 시작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