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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개 숲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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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네뷸라 섬 중부 편

나의 안개 숲 생존기 1


나는 왜 이렇게 운이 나쁜 걸까?

얼마 전에도 길을 잃어 간신히 동료들과 합류했는데, 이번에는 안개 숲에서 홀로 낙오해 버렸다. 어떻게든 숲을 빠져나가려고 갈고리를 던졌지만, 하필이면 그게 미트란의 나뭇가지에 걸릴 줄이야....

나, 과연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의 안개 숲 생존기 2

눈 앞의 안개가 흩어지며 커다란 나무가 나타났다. 나무에 새겨진 못생긴 까마귀는 분명 내가 남긴 표식이었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분명히 앞만 보고 걸었는데, 왜 자꾸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거야! 이제 안 가본 방향도 없었다. 불쌍한 나! 이렇게 쓸쓸하게 죽을 줄 알았다면 좀 더 방탕하게 살았어도 좋았을 텐데!

그 때, 저 앞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실처럼 가느다란 줄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의심스럽지만, 탈출이 절실했던 나로서는 그냥, 무조건, 숲을 나가게 해주는 구명줄로만 보였다. 사실,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스치긴 했지만, 뭐가 됐든 여기서 혼자 죽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줄은 점점 굵어지고 탄성도 강해졌다. 그런데, 줄 끝에 있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저걸 뭐라고 부르더라? 새하얘진 머리 속에 갑자기 정답이 떠올랐다. 거미 둥지! 그것도 엄청나게 큰 거미 둥지였다!

나의 안개 숲 생존기 3

겁에 질린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바보처럼 온 숲에 "여기 먹이 있어요!" 광고를 한 꼴이었다. 돌아볼 용기는 없었지만, 굶주린 괴물들이 따라오는 기척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놈들도 끈질기게 쫓아왔다.

뭐든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 주머니를 더듬자, 갈고리 하나가 손에 잡혔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갈고리는 곧 힘찬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빼곡하게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들을 향해 기세 좋게 갈고리를 던졌다. 어느 가지든 걸리기만 하면 단번에 이곳을 빠져나갈 심산이었다.

그때, 안개 저편에서 덜컥! 갈고리가 걸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힘차게 몸을 던졌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나무가 왜 움직이는 거지? 순간, 나는 그 거대한 나무에 얼굴 같은 게 달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글거리는 녀석의 눈빛이 나를 쏘아보았다.
젠장, 그것은 안개 미트란이었다!

나의 안개 숲 생존기 4

갑자기 머리채를 잡힌 미트란은 상당히 기분이 나빠보였다. 그때, 손에 든 갈고리를 바로 내려 놓았다면 미트란도 나를 용서해주었을까? 그러나 나는 그 웬수같은 갈고리를 끝까지 붙잡고 미친 듯이 내달렸다.

또다시 봉변을 당한 미트란은 그야말로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어찌나 사나운지, 그동안 쫓아오던 정체 모를 괴물들도 꽁무니를 빼고 도망칠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몇 마리는 남아 있었을까? 하여간 나는 미트란의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트란의 거대한 가지가 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등에 맨 가방이 죽죽 찢겨 나가는 게 느껴졌다. 가방이 다 뜯겨나가면 다음은 내 등가죽 차례겠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더 튼튼한 가방을 장만했을 텐데!

나는 등가죽을 지키기 위해 주변 나무들을 최대한 이용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애먼 나무들이 박살 나고 파편과 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나의 안개 숲 생존기 5

그렇게 얼마나 도망쳤을까. 손에 쥐고 있던 갈고리 밧줄이 다시 한 번 나를 콱 끌어당겼다. 볼품없이 나동그라진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미트란이 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뜻밖에도 거기에는 밧줄에 엉켜 꼴사납게 버둥대는 미트란이 있었다. 나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미트란이 그 긴 가지로 공격하거나 나무를 박살낼 때마다, 머리에 걸린 갈고리 밧줄이 조금씩 엉켜 결국 스스로를 꽁꽁 묶어버린 것이다!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니, 밧줄에는 가방에서 찢겨 나간 천 조각이며, 뿌리째 뽑힌 덤불, 깃털만 남은 새 둥지 등 온갖 잡다한 것이 엉켜 있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미트란이라니! 나는 당장 이 업적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길드 녀석들, 분명 처음에는 믿지 않겠지. 하지만 직접 보여준다면? 더 이상 아무도 나를 멍청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 가까이에서 나를 찾으러 온 길드장의 목소리와 길드원들의 불평이 들려왔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하러 갔다.

exit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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