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552344151
마일로 번즈의 모험 일지 - 테벤트 신전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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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감시대 주둔지 인근 편

마일로 번즈의 모험 일지 - 테벤트 신전 편 - 1

길드장 오마르가 기어코 상급 의뢰를 받아왔다. 그것도 투라네 마을의 탐사 의뢰라고 한다. 맙소사, 투라네 마을이라니...

투라네 마을은 마법사들의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지금은 불사류가 창궐하는 땅이다. 여러 길드가 함께 탐사대를 꾸릴 예정이라고 하는데,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그 길드 중 하나는 만들어진 지도 얼마 안 된 신생 길드라고 한다. 이름이 백조의 기사단이라고 하는데, 길드 인장은 백보 양보해도 오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투라네 마을에 대해 적힌 양피지를 찾아 그들 중 그나마 머리가 좋아 보이는 (혼자 안경을 끼고 있었다) 클레이라는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그들이 겁을 먹고 빠져서 다른 길드가 대신 참여하길 은근히 바랐지만, 녀석은 그저 감사 인사만 할 뿐, 내 귀한 양피지를 읽지도 않고 가방에 넣어버렸다. 그 자리에서 읽어보라고 채근했지만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던 커다란 남자가 갑자기 인상을 쓰며 다가오는 바람에 서둘러 돌아왔다.

다행히 남자는 양피지 속의 내용이 궁금한 것 같았다. 클레이가 양피지를 꺼내며 뭔가 설명했지만 남자는 관심이 식었는지 다시 아이들을 구경하러 가버렸다. 곁에 있던 인상 사나운 여자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침을 뱉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오마르가 딱딱한 표정을 한 젊은 여자와 왜소한 체격의 중년 남자 하나를 데리고 왔다. 여자는 저 오리인지 백조인지 하는 길드의 장 로엔이라고 했고, 남자는 투라네 마을의 길을 안내할 지리학자 라비드라고 했다.

나는 오마르의 주의를 돌리려 발을 동동 굴렀으나, 탐사를 함께 할 다른 길드장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바람에 점점 그에게서 멀어지고 말았다. 그들이 투라네 마을로 가는 일정과 준비사항을 점검하는 것을 보며, 나는 더 이상 발을 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나르시여, 당신의 신실한 신자를 돌보소서!

마일로 번즈의 모험 일지 - 테벤트 신전 편 - 2

우리는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쌀쌀한 새벽, 투라네 마을 앞에 모였다. 폐허가 된 투라네 마을은 죽음과 부패의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어제 나를 방해했던 덩치 큰 남자는 자신을 게라드라고 소개했다. 그는 엄청난 방패를 들고 탐사대의 선두에 섰는데, 크기나 무게도 그랬지만 방패가 뿜어내는 마력은 언뜻 보기에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주변을 얼쩡거리며 방패에 대해 물어볼 기회를 노렸다. 그는 나를 상대하지 않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얻을 수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방패가 파르르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삿된 것을 감지하는 방패...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전설이 몇 개나 있었지만, 일단은 목숨이 더 소중했기에 서둘러 일행 곁으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마을은 해골과 좀비들이 가득했다. 나는 낙오하는 사람이 없도록 백조의 기사단 쪽에도 주의를 기울였는데, 녀석들은 생각보다 노련했다. 특히 게라드는 무자비하게 놈들을 때려잡았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했는지 로엔의 날렵한 검술이나 클레이의 위력적인 마법이 점잖아 보일 지경이었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 때쯤, 우리는 땅에 패인 거대한 분화구를 발견했다. 마법사들의 전쟁 때 마력석이 날아와 폭발한 흔적 같았다. 우리가 분화구를 살피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라비드가 신전 비슷한 것을 발견해냈다. 로엔과 게라드가 불사류를 막으며 우리를 먼저 들여보냈다. 제일 먼저 신전에 들어간 사람은 백조의 기사단에서 가장 인상이 나쁜 활잡이 록시였다. 그녀는 마을에 들어선 이후, 줄곧 악취 때문에 욕지거리를 달고 있었다.

신전 안은 어두컴컴했고, 바깥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악취가 났다. 그 탓에 록시의 험악한 인상이 더욱 일그러져서 나는 몇 발자국 더 떨어져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클레이가 가져온 디스톤 루나-0의 불빛에 의지하여 신전을 살펴보았다. 밖의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보호석 같은 게 남아 있길 기대했지만, 발견한 것은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해골뿐이었다.

해골은 불사류로 변하지 않고, 기묘하게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와 길드원들이 해골을 살펴보고 있는데, 루나-0가 무언가를 감지한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일로 번즈의 모험 일지 - 테벤트 신전 편 - 3

클레이가 마법 수정을 꺼내 주변을 밝히자, 신전의 구조가 어렴풋하게나마 눈에 들어왔다. 넓고 둥근 광장처럼 보였는데, 독특하게도 가장자리를 따라 수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수로 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분수가 놓여 있었는데, 흉악한 가고일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마법 수정의 빛이 바닥에 닿자 루나-0가 다시 빠르게 뭔가를 중얼거렸다. 클레이의 곁에 다가가자 바닥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보였다. 그는 루나-0가 투르티잔의 고대 문자를 읽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신전이 흔들리며 흙먼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클레이가 뭔가 깨달은 듯 루나-0를 말리려 했지만 디스톤은 홀린 듯이 계속해서 문자를 읽어내려갔다. 위험을 감지한 오마르가 퇴각을 명했다. 문 가까이 있던 우리 길드원들은 서둘러 수로를 건넜지만 나는 마침 뛰어들어오던 게라드와 부딪혀 수로 속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수로는 말라 있었지만 아무래도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고통을 참으며 고개를 내밀자 광장은 고대 문자가 뿜어낸 보라색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음 순간, 바닥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몸을 일으켰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해골이었다. 해골의 입에서 쩌렁쩌렁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이었지만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누가 위대한 테벤트를 깨우는가."

테벤트의 부름에 광장 곳곳의 해골들이 되살아나 백조의 기사단을 포위했다. 길드원들이 다시 수로를 건너 지원했지만, 해골과 테벤트 사이에 낀 그들은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클레이가 또 가방을 뒤져 검은 수정을 꺼냈다. 탐사대는 그가 마법을 쓸 시간을 벌기 위해 격전을 벌였다. 특히 활을 가진 록시는 누구보다 넓은 범위에 걸쳐 활약했다. 그녀는 클레이에게 달려드는 해골들을 처치하려 루나-0의 머리를 밟고 뛰어올랐다. 그러나 록시의 행동에 집중력이 흩어진 클레이가 깜짝 놀라 마법 수정을 놓치고 말았다. 주문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마일로 번즈의 모험 일지 - 테벤트 신전 편 - 4

로엔이 재빨리 달려들어 떨어지는 수정을 낚아챘다. 다행히 수정은 깨지지 않고 검푸른 까마귀 수십 마리를 토해냈다. 해골을 공격하는 까마귀 울음 소리와 신이 난 록시의 고함 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해골의 기세가 주춤하자 테벤트는 화가 난 듯했다. 거대한 두 손에서 마구 뿜어져 나온 불덩이가 탐사대 위로 떨어졌다. 불길에 휩싸인 사람들이 바닥을 구르며 동료들을 넘어뜨렸다. 커다란 방패로 불덩이를 막던 게라드도 사람들에게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로엔이 게라드의 방패를 대신 집어들었으나, 불꽃을 맞은 그녀의 몸은 허공으로 떠올랐다. 테벤트가 앙상한 손으로 그녀를 움켜 쥐고 입을 벌렸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는데 그녀의 몸에서 굉음과 함께 강한 빛이 터져나왔다. 먹먹한 귀를 막으며 고개를 들자 테벤트의 팔이 터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느새 가고일 머리가 물을 콸콸 토하고 있었다.

불 붙은 게라드가 달려와 수로 속으로 뛰어 내렸다.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한 그는 소리 높여 탐사대를 불렀다. 사람들은 허둥지둥 게라드를 따라 몸을 던졌다.

다행히 불꽃은 잦아들었지만 바닥에 쓰러진 로엔에게서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어느새 덜 부서진 해골들이 다시 몸을 맞추고 그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게라드는 벼락처럼 로엔을 향해 달려갔지만 전의를 잃은 우리는 불안하게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록시가 도망치지 않고 뭘 보고 있냐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정신을 차린 우리는 신전 밖을 향해 내달렸다. 굶주린 테벤트가 사람들을 뒤쫓아 수로를 건너려 했지만,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외치며 물러섰다. 실라베스의 결계라고 한 것 같은데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클레이는 루나-0를 챙겨 가장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는데, 공포에 질려 잘 뛰지 못했다. 우리는 그를 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테벤트가 너무 가까이 있어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마일로 번즈의 모험 일지 - 테벤트 신전 편 - 5

테벤트가 클레이의 머리를 물어뜯으려는 순간, 클레이의 몸이 허공을 날아 수로 건너편에 떨어졌다. 록시의 올가미 화살이 클레이를 낚아챈 것이다. 밧줄에 쓸린 록시의 손이 피로 흠뻑 물들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씩씩하게 클레이를 걷어차며 모두를 대피시켰다.

밖에서 기다리던 라비드가 우리들을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다. 신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우울하게 몸을 구겼다. 지긋지긋한 해골들과 테벤트는 신전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안에 남은 두 사람이 문제였다. 우리는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하늘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록시의 입에서 길다란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전 쪽을 살펴보자 석양을 등진 커다란 그림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로엔을 안고 있는 게라드의 그림자였다.

오마르의 입에서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비로소 크게 웃고 울며 살았다는 기쁨에 몸을 떨었다.

나는 길드원들과 함께 게라드에게 다가가 그의 용기를 칭찬하고, 로엔의 회복을 기원했다. 그리고 클레이를 찾아 굉장했던 마법들을 칭찬했다. 그는 겸손하게도 그건 자신의 마법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록시가 어디선가 부리부리한 눈을 하고 나타나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우리 길드는 모두 심각한 부상을 입어 한동안 숙소에서 요양해야 했다. 일주일 쯤 지나서야 오마르가 의뢰 보수와 한 뭉텅이의 서류를 받아왔는데, 서류에는 솔리시움과 투르티잔의 3차 대전쟁과 쿠르트라고 불리는 투르티잔의 대장군에 대해 적혀 있었다. 쿠르트들은 투르티잔의 왕에게 충성의 증표로 맹약체를 바쳤는데, 전쟁에서 승리한 솔리시움이 이 맹약체를 전리품으로 요구했다. 신전에 잠들어 있던 테벤트는 그때 넘어온 다섯개의 맹약체 중 하나인데, 클레이의 그 멍청한 디스톤이 투르티잔의 고대 문자를 읽어내는 바람에 망령을 깨우는 주술이 발동한 것이다. 나는 디스톤이 아무리 똑똑해도 역시 돌머리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서류를 멀리 치워버렸다.

exit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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