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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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에 관하여 1 내가 뱀파이어 연구에 주력하게 된 것은 20여 년 전부터였다. 당시 나는 시신을 해부하고 사인을 밝혀주는 치료사이자 주술사였는데, 부수적으로는 장의사 일도 겸했다. 이는 심각하게 훼손된 사체를 최대한 생전 모습에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는데, 사실 돈이 되는 일은 이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새로 들어온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던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하고 말았다. 바로, 완전히 숨을 멈췄던 시체가 벌떡 깨어난 것이다. 그 즉시 마법사 친구 루퍼트를 황급히 불러 그를 회복시키자, 정신을 차린 남자는 내게 자신이 죽게 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었다. 나는 내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그 충격적이면서도 인생에 반향을 일으켜 준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자 한다. 우선,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세르지오라고 소개했다. 그는 전 세계를 누비던 유능한 뱃사람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차 일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매번 승선을 거절당하고 여관에서 술에 빠져 살던 세르지오는 불현듯 나타난 의문의 귀족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게 되었다. 돌아오는 그믐날 밤, 톨랜드 서쪽 해안에서 떠돌고 있는 배 한 척을 항구까지 가져오면 거금을 주겠다는 의뢰였다. 하지만 흔쾌히 일을 맡아 보조 선원들을 모으던 그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대체 어떤 물건을 실은 배이길래 선원이 한 명도 없는 거지? 이 어렵지 않은 일을 굳이 왜 나에게 시킨 걸까?" 이에 세르지오는 분명 배에 몰래 들여오는 보물이 실려 있을 거라 확신했고, 선원들과 함께 그 보물 일부를 빼돌리기로 계획했다. 뱀파이어에 관하여 2 며칠 뒤, 의뢰인이 말한 대로 그믐날 밤이 되자 톨랜드 해안 안갯속에서 거대한 상선이 나타났다. 배에 오른 세르지오 일행은 항구를 향해 선수를 돌리고 서서히 귀환을 시작했다. 그는 숨겨둔 보물을 찾기 위해 선실로 내려갔다.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선실은 칠흑 같은 어둠과 소름 끼치는 불길함만이 가득했다. 그 속에서 등불을 밝힌 순간, 곧 세르지오의 눈앞으로 수백 개의 관들이 나타났다. 이를 본 선원들은 모두 겁에 질려 얼어붙거나 갑판 위로 달아났지만, 세르지오는 관 속 어딘가에 분명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쇠막대로 관 하나를 열어 확인한 그때, 세르지오는 이내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벌였다는 걸 깨달았다. 수백 개의 관 속에는 미지의 장소에서 온 뱀파이어들이 잠들어 있던 것이다. 곧, 인기척에 눈을 뜬 뱀파이어들은 오랫동안 굶주린 듯 배 안의 모든 선원을 잡아먹었다. 오로지 세르지오, 그 혼자만을 살려둔 채 말이다 이후, 우두머리로 보이는 뱀파이어에게 물려 정신을 잃은 세르지오는 깨어나자마자 그의 명령에 따라 배를 항구로 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뱀파이어들은 모두 박쥐들로 변해 대륙으로 날아갔고, 우두머리 뱀파이어는 그에게 언젠가 다시 찾아올 테니 주인을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마친 뒤, 세르지오는 더 이상 그들의 하수인으로 살 수 없다며 제발 자신을 죽여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루퍼트는 이미 하프 뱀파이어가 된 자는 마법으로 되돌릴 수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려던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한 세르지오는 떠오르는 강렬한 햇빛에 몸을 던져 고통스럽게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후부터 나와 루퍼트는 뱀파이어 퇴치 연구에 평생을 바쳐왔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우린 드디어 하프 뱀파이어의 흡혈귀 변이를 멈추는 물약과 주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치료법을 '세르지오 요법'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뱀파이어에 관하여 3 하지만 과연... 세르지오와 함께 배 안에 있던 수백 명의 뱀파이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
